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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경숙 편집.전은주 사진.서다운

예배와 연주자

한경숙

본문

“연주를 하면서 예배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연주로 예배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예배팀에서 연주자로 섬기는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러한 고민들을 듣게 됩니다.

예배팀으로 예배를 하게 될 때, 일반 회중들에 비해 연주자들은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집니다. 특히 연주하는 것이 능숙하지 않은 분들은 더더욱 긴장 상태에서 예배를 섬기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은 마치 자신이 예배를 방해 한 것 같다는 생각, 예배가 끝난 후에 밀려오는 '난 오늘 온전한 예배를 했는가'에 대한 생각과 질문들로 인해 때론 정죄 받는 느낌이나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은 음악적인 긴장감에서는 자유롭겠지만 자의식이 스스로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죄성이 무대에서 주목받고, 영광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시간 내내 싸워야 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연주자로 예배사역을 하면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연주로 예배를 섬기는 것이 다른 사람이 예배하는 것만 돕고 정작 나는 예배에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예배하는 나'
'연주하는 나'

오랜 고민들 끝에 그 두려움은 '예배하는 나'와 '연주하는 나'를 분리하는데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성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만물의 구속(redemption)을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예술 또한 구속의 대상이고 구속된 예술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그 안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기 연주로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연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연주는
또 하나의 예배 언어입니다

시편 150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우리의 연주는 또 하나의 예배 언어입니다. 연주되는 음 하나하나가 회중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는 역할이며,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님을 높이는데 드려지는 것입니다. 연주가 능숙하지 않아 소리가 거칠게 들려도 참으로 예배하는 연주자의 연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기능적인 요소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 긴장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예배의 가치와 동기가 분명하다면 그 예배는 온전히 드려지는 것입니다.

자아실현을 위한 연주는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연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인
제자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영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연주자의 예배는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의식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자아실현을 위한 연주는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매일, 순간순간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제자도일 것입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악기로 예배하고 싶어서 예배팀에 들어오고, 섬기게 되었는데 갑작스레 마주하는 '제자도'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크고, 괴리감 있게 느껴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를 따르고, 믿는 자들에게 제자가 되고(요 8:31), 제자 삼을 것(마 28:19)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 되어가는 삶의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연주로서 예배하고, 회중들을 연주로서 섬기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예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연주로 예배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는 가사 묵상입니다. 예배팀은 함께 부를 곡을 선곡하고, 곡에 담긴 메시지를 음악적인 것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갖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메시지를 음악으로 구현하게 되는데, 여기서 가사 묵상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가사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상력을 통한 통찰로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통한 연주는 곡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때로 지성으로만 반응하던 곡들이 메시지에 적합한 연주가 더해져 감정으로까지 느끼게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는 되는 것입니다. 연주자들이 시도해 볼 것은 코드와 멜로디에 집중하던 것에서 가사에 더 초점을 맞추고, 가능하다면 연주하면서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가사를 곱십으면서 연주할 때, 연주자 자신이 더 선명한 고백으로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메시지와 어우러지는 음악의 차용입니다. 음악과 메시지가 충돌을 일으킬 때 회중들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음악이 철저히 메시지에 담긴 내용과 조화를 이루도록 편곡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연주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예배 안에서 음악적 스타일이 어느 선까지 허용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각 공동체의 예배 스타일은 마치 여러 세대를 통해 전해 내려온 문화적 관습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배 음악은 시대적인 문화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고,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 시대 안에서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적합한 문화의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다양하게 펼쳐있는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것보다 공동체에 맞는 창의적인 것들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개인의 예배가 아니라 회중 예배임을 기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추구하기보다는 공동체적 필요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연주자 또한 그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예배자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경배의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에서는 찬양곡을 같이 부르는 것 외에도 통성으로 기도하거나 선포를 하기도 하며 인도자가 회중들을 향해 멘트를 하기도 합니다. 이때에 연주자들에게는 종종 예배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치 이 연주가 그저 배경음악인 것 같고, 그저 회중들의 예배를 돕는 시간으로 여기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 말입니다. 모든 예배의 요소요소에서 연주자들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배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배자임을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인도자가 멘트할 때 그 내용의 정서를 따라 연주로 함께 하고, 통성 기도할 때는 기도의 마음을 담아 연주로써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연주로 모든 예배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연주로 예배하는 것이 많은 이유들로 인해 쉽지만은 않지만, 다시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그 예배 가운데에 초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존재와 연주를 모두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연주하는 예배자로서 그 부르심에 반응하며, 참되게 예배하는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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