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인팅 신디사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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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꽤 오랫동안 사역을 하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어노인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교회에서 반주를 해오다가, 2011년에 같은 교회를 다니던 오빠가 어노인팅에서 신디사이져 오디션 모집이 올라왔는데 한번 지원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어요. 현재 어노인팅에서 일렉 기타로 섬기고 계신 정성권 형제님인데요(웃음). 저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반주를 해오기도 했고 전공도 피아노를 택했지만, 상대적으로 신디사이저는 많이 연주해보지 않아서 신디사이저라는 파트를 맡아서 해야 한다는게 걱정도되고, 부담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지원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었죠.
그렇군요. 그러면 어노인팅에 들어와서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굉장히 어려웠죠. 영어 단어 겨우 한 두 개 알고 있는 사람이 완벽한 문장으로 얘기해야 하는 느낌이랄까…?(웃음) 학교 다닐 때 합주 시간에 몇 번 연주해본 게 다였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신디사이저 레슨도 찾기가 어려웠고, 정보가 별로 없었거든요. 정말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구요.사실 신디사이저는 현장에 없는 다른 악기들을 구현해내는 악기잖아요. 근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연주해 본 악기라고는 피아노밖에 없었거든요. 현악기, 관악기 같은 모든 악기를 피아노 치듯이 밖에 표현을 못 하는 거예요. 한계가 많았던 거죠
정말 어려웠겠는데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어노인팅 정규 11집에 참여하게 될 때.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정규 음반 같은 경우는 카피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이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인데다가. 11집 같은 경우는 다민족 예배 컨셉이어서 정말 더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어떻게 연주해야 각 민족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노인팅에 들어오는 것부터, 들어오고 난 후까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교회에서 반주했을 때부터 시작하면 인생에서 연주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푸른 자매님에게 연주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성격상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해요. 그런데 그나마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연주인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외동으로 자라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늘 혼자 있어야 했거든요.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늘 혼자서 해결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때 집에서 피아노를 쳤던 게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됐고 저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된 것 같아요. 잘 드러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제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같아요.
선물이라는 표현이 인상깊네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주자로 사역을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언제쯤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배 때 내게 익숙한 공식과, 내가 준비한 작전 안에서만 연주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악보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예배를 드렸다는 느낌보다 연주만 하다가 끝난 느낌이 들 때도 많았구요. 그런데 악보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하며 연주하는 것도 너무 좋은 일이지만, 결국은 제가 그것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예배의 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배를 잘 섬기기 위해 콘티를 고민하고, 악보를 준비하고, 코드 진행을 바꿔보는 그 모든 과정이 모두 연주자의 예배에 포함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이런 과정이 있을 때에야 앞서 말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예배를 위해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는 연주자와 함께 예배할 수 있다니 영광이네요!... 푸른 자매님이 벌써 8년째 어노인팅과 함께 하고 있는데, 긴 시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어노인팅에 지원하는 과정 자체도 어려웠고, 또 기능적으로도 저를 많이 깨야 했었죠.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건 팀에서 사역을 하는 중에 어머니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던 일이에요. 그때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음과 상황이 힘든 중에도 사역은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해왔나요?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거나, 빨리 사라지지 않는 문제이다 보니까 계속 사역을 지속한다는 것이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오히려 제가 사역을 하고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저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내색하지 못해서 문제에 고립되기 쉬운 성격인데, 팀과 함께 있고 예배 안에 있으면서 제가 이 고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조금 더 성숙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양이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찬양인데요. 내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내 삶이 예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결국은 그 상황을 겪고 있는 ‘나’ 그대로 나갔을 때 주님이 내 예배를 받으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내 힘든 상황 때문에 예배드릴 수 없을 것 같아 예배의 자리를 외면해버렸다면 나는 그대로 그 감정에 갇혀버릴 테지만, 예배의 자리에 나가면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팀이 저를 많이 기다려주고 배려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년 연말에 위탁 면담을 할 때마다 팀에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너의 고난이 결코 너만의 고난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공동체로써 이 시기를 넘겼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참 감사했고, 계속 사역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죠.
공동체와 함께 삶의 여러 시기를 보낸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위에서 가장 좋아하는 찬양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찬양을 골라주셨는데.. 푸른 자매님에게 최근에 가장 마음으로 깊이 고백하게 되는 찬양이 있다면요?
정규 13집에 있는 “그는 사랑”이라는 찬양과 “그 사랑만으로”라는 찬양이에요. 이 찬양을 통해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오랜 기간 어머니가 투병하시면서 때론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고, 해답 없는 질문들로 마음이 어려워질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 제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의 품. 5,6번 곡을 보면 아버지를 떠났던 둘째 아들이 결국 돌아오잖아요. 저 또한 하나님을 원망하고, 외면하며 힘들어하다가도...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저 없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3집을 준비할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또 요즘의 상황과 맞물려 새롭게 다가오네요.
마지막으로, 푸른 자매님에게 어노인팅이란?
한 몸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시기에 제가 팀에서 잠시 부재 중일 때가 있었어요. 갑자기 몸 중에 한 지체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것인데, 나머지 지체인 멤버들이 정말 제 빈자리를 채워주며 열심히 사역하고 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돌봐주는 모습을 보니까, 머리 되신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한 몸이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이런 어노인팅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해요.
이번 주 ‘사람이 온다’에서는 푸른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시에서 말하듯, 실로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지요. 공동체의 각 지체들의 삶의 계절은 다 다를 테지만, 때론 안아주고, 때론 견뎌주며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살아나가길. 그렇게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충만히 서나가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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