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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글.박기범

존재하기를 연습하다

예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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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씩, 마치 1인칭 게임 화면처럼,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을 훑어보며 나 자신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존재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 세월이 지나 낡고 닳아서 그만큼의 호감을 찾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하지만 어쩌랴. 그게 나다. 더 멋진, 더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게 바로 나다.

아.. 내가 여기 있구나...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게 바로 나구나...

서울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우산 아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압박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better의 압박.’ 누가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해도 날마다 그 압박 속에 살아간다. ‘넌 지금보다 나아져야 해... 지금은 부족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 어서 빨리 더 나아지지 않으면 결국 너의 삶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거야. 결국 너는 불행에게 따라잡힐 거야. 네가 그토록 원치 않았던 바로 그 상황이 벌어지고 말 거야...’ 그 모든 무언의 메시지는 마침내 결론적인 한마디로 모아진다. ‘넌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까지 똑같이 찾아들 때이다. ‘지금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해... 더 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해... 말씀과 묵상을 아무리 더 해도 아직 부족해... 하나님은 널 사랑하시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도 널 사랑하실 수 없을걸...’

분명,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사랑하기에 말씀과 묵상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끝없는 거절감과 두려움들은 생각을 계속해서 정돈하고, 주기적으로라도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지 않으면 ‘better me’의 압박은 공포가 되어 어느새 슬그머니 확신 비슷하게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정신 차리고 다시 마음을 돌아본다. 성경을 통해 그토록 처절하게 우리를 부르신 그 사랑의 메시지가 고작 “좀 더 잘하란 말이야...” 정도로 둔갑해서 들려온다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날의 순간이 기억난다. 몸과 마음이 엄청나게 탈진하여 멍하니 버스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던 그 시간... 갑자기 시편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아무런 걱정도 염려도 없이 푸른 초장을 뒹굴다 물가로 가서 목을 축이고 있는 - 그 철없는 어린 양에 감정이입이 되어 지친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마음의 쉼을 누릴 수 있었던 그때 그 기억. 하나님 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시 23:3)"가 아니시던가!

하나님은 과연 ‘주님을 닮아가며, 따라가는 즐거움’이 아닌 ‘better의 압박’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시는 분인가. 그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하나님을 피해 숨은 그때부터... 스스로의 죄로 인해 시작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자.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아버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 우리는 처음 창조의 그때처럼 그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자녀로서 존재하는(be) 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수행과제들 속에서, 수많은 ‘better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 우리를 부르시는 ‘푸른 초장에서 주를 신뢰함으로 그냥 존재하기’를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혹시 그렇게 살면 불행이 찾아올까. 뒤로 밀려나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까..?

내가 나로 그저 존재하는 것.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따라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 환경과 상황이 열악하겠지만 다시 그 압박의 삶을 살기로 선택할 것인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11)”

참 신기하게도 우리가 ‘better의 압박’에서 느슨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대의 메시지를 거슬러 살아가기로 마음을 모은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하는 것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로 부르셨다고... 존재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어렵지만 너를 향해 나도 그렇게 해보겠다고 말해주는 서로가 있다면,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더욱 자주 푸른 초장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이미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임을 다짐해 보자.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 하기보다, 지금 오늘에 이야기하시는 주님을 따라 하나님의 평안을 충분히 누리며 살기를 연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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